선진국의 국채금리가 일제히 상승하며 그 여파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으로 번지고 있다. 신흥국은 경제적 발전과 산업화가 진행 중인 국가로 베트남, 인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신흥국들의 경제가 일제히 흔들리며 한국의 대외 경제까지 피해가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 불안의 충격이 한국 경제로 번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이 장기화된다는 분석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7일 한국은행의 「8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한국 주식·채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투자 자금이 약 45억 달러 순유출됐으며 이러한 현상은 7개월째 유지 중이다. 양준석(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순유출은 국내에 유입된 금액보다 유출된 금액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경우 채권금리가 상승해 정부와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제조업에도 긴장감이 감돈다. 중국산 제품이 신흥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면서 한국 제조업의 입지가 좁아지는 탓이다. 산업연구원(KIET)의 「국제무역구조 변화 동향과 한국 산업의 대응 방향」에 따르면 베트남과 인도 등의 수입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80%를 넘어선 반면 한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급감하는 추세다. 제조업이 수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따른 타격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 교수는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큰 나라에 속한다”고 전했다.
환율 변동성이 커지며 수출입을 담당하는 물류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물류업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금을 정산하는 시점 사이에 통상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 이상의 시차가 발생한다. 그러나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에서 두 달 만에 1,300원대로 급락하는 등 ‘널뛰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변칙적인 환율 변동으로 예기치 않은 손실을 입을 위험에 대한 불안이 증폭된다. 양 교수는 “물류업계는 다양한 국가로 화물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달러로 거래하기 때문에 환율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금융 불안을 심화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현재 미국은 전쟁 장기화로 인한 재정 부담 등으로 인해 지난 9월 30일 기준, 10년물 국채금리와 30년물 금리가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여겨지는 만큼 미국 국채금리 상승은 글로벌 자금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다른 국가들에 그 여파가 확산되는 것이다. 장재철(세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의 금리 차이는 자국 통화의 약세 압박을 더욱 강화한다”며 “때문에 신흥국의 정부는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상 등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채금리 상승으로 미국 정부의 중국을 향한 관세 기조가 방어적으로 변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국채금리 상승으로 정부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재정 여력이 줄어들면서 미국이 무역 상대국에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려는 유인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에 중국산 제품이 신흥국과 유럽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해당 시장에서 경쟁이 심화하고 무역 질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양 교수는 “미국에서는 제조업이 위험성이 높은 사업으로 평가받는다”며 “그로 인해 제조업이 후퇴하고 그 적자를 메꾼다는 명분으로 높은 관세를 책정했다”고 전했다.
‘매도 악순환’으로 인해 금융 불안 기조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국채 금리 상승으로 펀드들이 국채를 매도하면 시장에 국채 공급이 늘어나 금리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 시장에 국채 매물이 많아지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국채금리는 상승하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국채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장 교수는 “매도 악순환이 이어질 경우 시장에서의 물량이 크게 줄어들어 건전한 재무의 회사도 회사채 차환을 어렵게 한다”며 “구조적 경제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국은 대외 발 금융 충격에 대비해 경제 안정화 조치 마련에 나섰다. 과도한 미국 국채금리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국채 발행물량 축소와 긴급 바이백 등의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신꽃비(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의 공급량을 줄이는 것은 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신흥국 금융 불안의 장기화를 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현재 원화 강세와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재정 신용도가 맞물려 다른 신흥국에 비해 금융 불안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핵심 산업인 반도체 수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환율과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점검하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양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은 반도체 수출을 통해 타격을 받는 정도가 적지만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수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