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거리 위의 날선 외침, 노동자를 위하여 (한성대신문, 578호)

    • 입력 2022-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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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5-15 23:48

‘멈춰! 반노동 정책, 엎어! 불평등 체제’. 지난 1일 ‘2022년 세계노동절 대회(이하 노동절 대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내세운 슬로건이다. 이어 민주노총은 이날 집회에서 ‘차별 없는 노동권’과 ‘질 좋은 일자리 쟁취’를 기치로 내걸었다.

▲노동자들이 서울시청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까지 단체 행진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 박희진 기자]

132년의 역사

5월 1일은 세계 노동자의 날로 5월(May)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메이데이(May Day)라 불린다. 노동절의 유래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는 서구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몸을 키우면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긴 노동시간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미국 시카고 노동자들은 1886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의 법제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자들의 파업 과정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그에 따른 경찰의 무력 진압에 노동자들이 체포되고 일부가 사형까지 당하는 등 처참한 노동 운동의 역사가 기록됐다. 이후 18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카고의 참사를 기려 5월 1일을 메이데이로 정하면서,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우리에게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로 익숙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노동절’이었던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는 단어에 계급 의식이 담겨 있어 이를 희석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근로(勤勞)’란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의미라는 점에서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노동(勞動)’보다 근면성실함을 당연한 자세로 여긴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근로’를 ‘노동’으로 변경하는 명칭 수정에 대한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중이다. 일례로 이번 메이데이를 맞아 울산시의 ‘근로자종합복지회관’은 ‘노동자종합복지회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산업재해

한편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이 역시 현실과 맞지 않은 형편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의 ‘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사망사고의 80.9%가 발생했다. 그중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기간으로 법망을 피해 가는 5인에서 49인 사업장에서의 발생 비율은 42.5%로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당장 올해만 따져도 노동 현장에 드리운 산업재해의 그림자는 여전하다. 올해 1분기 산업재해 사고사망자는 157명이다. 지난해와 수치를 비교해보면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10명 중 6명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감수해야 하는 우리나라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지 않을 권리를 원하여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며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다. 1일 열린 노동절 대회는 올해로 132주년을 맞았고, 민주노총의 주관 하에 서울을 포함한 전국 16개 지역에서 전날부터 이틀간 진행됐다.

이중 서울 집회는 대회사를 시작으로 연대 발언, 선언문 낭독, 단체 행진으로 이뤄졌다. 마지막 식순인 단체 행진에서는 집회 참여자들이 서울시청과 을지로, 이어 종로 및 광화문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까지 행진했다. 주최 측의 이번 집회 추산 인원은 1만 4천여 명이다. 이는 애초 예상됐던 약 5,000명의 인원보다 3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 수치다. 이에 따라 기존 왕복 8차선 도로 중 5개 차로에서 집회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노총의 차로 통제 확대 요구에 의해 6개 차로에서 노동절 대회가 이어졌다.

대회사를 맡은 양경수(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가 가진 힘으로 싸우자. 남성이면 여성을 위해, 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을 위해 노력하자. 큰 회사에 다닌다면 작은 사업장을 위해 싸우자. 비장애인이면 장애인을 위해 나서자. 노동조합의 힘으로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자”며 “우리의 투쟁으로 노동의 시대를 힘차게 열어 내자”고 천명했다.

이어진 연대 발언에서는 유지향(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사무국장과 오대희(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이 단상에 올랐다. 선언문 낭독에는 김진억(민주노총서울본부) 본부장을 포함해 총 16개의 노동조합(이하 노조) 위원장들이 참여했다. 16개 노조는 ▲전국건설산업노조연맹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조 ▲전국금속노조 ▲전국대학노조 ▲전국민주여성노조 ▲전국민주일반노조연맹 ▲보건의료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사무금융노조연맹 ▲전국민간서비스산업 노조연맹 ▲전국언론노조 ▲전국교직원노조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조연맹 ▲전국민주화학섬유노조연맹 등이다. 이들은 모두 차별 없는 노동 기본권 보장과 고용 불안 없는 질 좋은 일자리 보장을 연호했다.

▲단체 행진이 마무리된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결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 : 임혜은 기자]

연대하는 청년

이번 노동절 대회에는 청년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의 참여도 있었다.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남상혁(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 대표는 “우리 동아리는 노동자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집회에 참여했다”며 “매년 진행되는 집회가 실제로 우리 사회를 노동중심사회로 만드는 발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노동절 대회에 참여한 대학생 대표들과 일반 학생들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박준형(성공회대학교 제37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고 참여 소회를 밝혔다. 임현창(고려대학교 철학과) 재학생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보고대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보기 위해 참여했다”며 “모든 사람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하며 노동조합 조직 역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 현장에서 노조 활동을 이어나가는 노조원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이병연(전국대학노조 숭실대학교지부 학사행정지회) 지회장은 “불합리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노조에 대해 알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뤄낼 수 있도록 노동절 대회에 참가했다”며 “모든 시민이 서로가 처한 환경을 돌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공약과 관련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정권이 시작된 지 불과 6일, 새 정부의 노동 관련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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