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자와 함께하는 시사한잔> 위태로운 간호법 제정 줄타기 (한성대신문, 579호)

    • 입력 202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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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6-07 00:00

『간호법』 제정안이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방지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26일 논의가 예정돼 있던 간호법 제정안이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싸고 간호사 측과 의사 측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양측의 파업 예고까지 이어졌지만, 당장 논란 자체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분리해 독립된 체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입법이 추진됐다.

당초 간호법은 5월 9일 1차 관문이었던 국회 상임위원회의 소위원회를 통과하고, 이후의 보건복지위원회까지 통과하면서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순항이 예상됐다. 그러나 의료계 내부의 목소리가 첨예하게 엇갈리자 입법 논의가 하반기로 미뤄졌다. 이 과정에서 간호법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조무사 7천여 명이 거리로 나서고, 삭발 투쟁이 이어졌다. 간호사 측도 이에 맞서 간호대생을 포함한 5천여 명이 모여 간호법 통과를 외쳤다. 해당 법안은 ▲간호사 업무 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 5년마다 수립 및 3년 주기의 실태조사 ▲환자 안전을 위한 적정 간호사 확보와 배치 ▲처우개선 기본지침 제정 및 재원 확보 방안 마련 ▲간호사 인권침해 방지 조사 및 교육의무 부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간호사 측은 간호법 제정이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간호협회의 「2020년 간호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인구 1,000명 대비 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인 8.9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8명이다. 더불어 간호사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인원이 줄어 숙련된 간호사가 부족하며, 이는 결국 간호 서비스의 질 하락을 가져온다는 것이 간호사 측의 의견이다. 간호법 제정이 국제적으로도 합당한 방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실제로 해외 90개국에서이미 간호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 및 대만 등의 60개국은 간호법과 의사법 그리고 치과의사법 등까지 각각을 분리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의사 측은 ‘간호법’이라는 명칭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간호사법’이 아닌 간호법은 직업에 관한 법이 아니라 업무를 다루는 직무법이며, 이 때문에 통합적으로 관리하던 의료 일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변호사법, 공인회계사법 등은 모두 직업에 대한 법률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간호라는 직무를 다룸으로써 의료와 간호의 구분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정안에 포함된 ‘모든 국민은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내용도 양측의 의견이 맞섰다. 쟁점이 되는 항목은 ‘지역사회’로, 의사 측은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의료기관 밖으로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의료기관 내에서도 간호사 수급이 어려운데, 범위가 확대된다면 인력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료기관이 아닌 노인복지시설, 어린이집 등의 지역사회로 업무 영역을 넓힐 경우 의료기관의 간호 인력난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간호사 측은 의료 패러다임 변화에 걸맞은 움직임이라는 입장이다. 가속화되는 고령화 사회 등으로 인해 대두되는 돌봄 문제가 간호법 제정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병원에 묶여 있는 간호 업무가 지역으로 확대된다면 독거노인 등에 대한 간호가 가능해져 지역의 돌봄 체계가 더욱 온전한 형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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