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허무맹랑한 제도에 청년 겨눈 '깡통전세' (한성대신문, 580호)

    • 입력 202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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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8-29 00:00

깡통전세 피해 청년 속출

보증보험 가입조차 어려워

전세사기 관리 기관 필요

최근 전세보증금 문제로 때아닌 진통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깡통전세’ 사기가 증가하면서 전세 계약에 따라 지불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속이 텅 비어 알맹이가 없는 ‘깡통’처럼, 깡통전세는 전세 계약 해지 또는 만료 시에 세입자가 임대인으로부터 정당한 사유 없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세계약을 통칭한다.

이러한 계약의 사례는 개별적으로는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을 때 발생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하 전세가율)이 80% 이상이면 통상적으로 깡통전세 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본다. 전세가율은 부동산 시장의 상황에 따라 등락 폭이 크지만, 통상적으로 볼 때 대략 50~60% 정도다. 즉 전세가율이 80%가 넘는 주택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고 있으므로, 전세 만료 시점에 집주인이 그에 상응한 금액을 준비하지 못하거나 애초에 큰 금액을 사기치기 위해 기획된 깡통전세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최근 깡통전세 피해 사례가 증가하는 것도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한 전세가율 상승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지난 7월 한국도시연구소가 공개한 「2021~2022 전국 공동주택 단지별 전세가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 10일까지 전국에 거래된 전셋집의 전세가율은 평균 90.9%였으며,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주택은 전체 거래량의 3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영(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아지는 것은 매매수요가 전세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이 야기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전세수요가 증가해 전셋집이 부족해지면서 전세가격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는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보다 더 높으므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높은 전세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깡통전세 문제에 청년층이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10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공개한 「악성 임대인에 의한 보증사고 피해 임차인 연령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8월까지 보증사고 피해자는 10대 1건, 20대 291건, 30대1,168건, 40대 443건, 50대 161건, 60대 61건, 70대 이상 35건으로 드러났다. 보증사고 피해자 중 대부분은 청년인 셈이다. 이 교수는 “전세 계약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초년생들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사소한 계약이 아니다. 부동산 계약에 있어 법적인 관계 등을 파악해야 하는데 독립하는 대부분의 청년이 이러한 부분의 지식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요 거주 형태에 따라서도 청년층은 깡통전세의 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다. 청년층은 대체로 전세보증금이 낮은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데, 바로 이 다세대 주택이 깡통전세의 주요 표적이기 때문이다. 2019년 한국부동산분석학회가 발행한 「서울시 세대별 1인 가구의 주거 특성 분석 및 정책제언」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층 주거 특성은 ‘다세대 주택’ 및 ‘다가구 단독주택’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지난달 정우택(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전세 사기 기획수사 단속 기간 중 검거현황」에 따르면 전세사기를 당한 전체 가구 495명 중 다세대주택(251명)이 절반을 넘었으며, 오피스텔(108명), 아파트(79명), 기타(38명), 단독주택(19명)이었다. 서원석(중앙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기본적으로 깡통전세는 주택 가격이 저렴한 빌라 같은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다. 아파트나 고급 빌라에서는 발생할 확률은 비교적 적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깡통전세 피해자가 전세사기를 입증하기에 턱없이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이다. 고의성이 명확히 증명돼야 입증되는 사기 범죄의 특성상 깡통전세 피해자가 법적으로 피해를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전세 계약 시점에는 집주인이 보상할 능력과 의사가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파산으로 변제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면 현행법상 사기죄를 적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깡통전세 사기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고의적으로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가설이 확인돼야 하지만 확인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사기는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형사처벌 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재판까지 진행돼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작년부터 임대주택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됐지만, 가입조건 문턱이 높아 모든세입자가 보험에 가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주택가격이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의 합보다 많으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이 그 일례이다. 보증보험은 깡통전세 사례가 발생하면 우선 세입자에게 세금을 지급하고,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주택을 매매함으로써 손해를 보전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 주택을 매매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돈이 전세금보다 적기에 보험사가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으므로 가입이 거절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가율이 치솟는 마당에 애초에 전세금이 매매가격을 초월한 부동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아예 보증보험 가입이 불가하므로, 이 정책이 부동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태욱(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는 “임대주택보증보험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일정한 가입조건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전세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을 알면서 보증을 제공한다면 부도덕한 사람들에게 국가 돈을 나눠주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보험의 가입조건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가입조건 확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를 표한다. 모든 피해자를 구제할 만큼 예산을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영곤(강남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보험사를 통해 모든 전세보증금 반환 문제를 해결하면 보험사에서도 적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정부에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시켜야 하는데, 많은 국민들의 반발이 예상돼 해결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지규현(한양사이버대학교 디지털건축도시공학과) 교수는 “집주인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HUG가 대신 돌려줘야 하기에 집주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깡통전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위법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제도도 필요하지만, 사기를 일삼는 집주인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제재가 존재해야 1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서원석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부동산 전문 부처 기관을 만드는 것은 어렵겠지만, 현재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주택의 부정 이용 발생 여지가 있는 경우를 관리할 수 있는 부서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임차인이 집을 계약하기 전 임대인의 세금 체납액, 선순위 임대차 현황 등을 공인중개사가 의무적으로 확인시키는 제도를 통해 집주인의 채무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면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책의 개인정보 침해 우려에 대해 서진형(경인여자대학교 세무회계과) 교수는 “개인정보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재산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 정보는 공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 교수는 “물건을 거래하는 데 있어 공인중개사에게 정보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주택가격의 일정 수준 이하로만 받을 수 있게 제한하는 법률이 마련돼야 함을 주장한다. 이 교수는 “임대인이 주택가격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을 초과하게 되면 법의 제재가 이뤄질 수 있게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전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부동산 계약에 대한 개인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서원석 교수는 “대부분의 20·30대는 집주인 또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이 집을 구할 때는 개인적으로 해당 건물의 정보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민 교수는 “주로 청년의 지식 및 경험의 부족, 불성실한 공인중개사 등으로부터 깡통전세 피해가 일어난다. 임차인이 집을 계약하기 전『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내용을 숙지한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순위 채권 : 전세보증금보다 우선 변제권이 인정되는 권리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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