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스스로도 심각하다는 청년 문해력, 왜 그럴까? (한성대신문, 582호)

    • 입력 2022-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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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10-11 00:00

일상생활에 영향 주는 문해력

뉴미디어 보편화가 저하 원인

듣기 우선되는 문화 정착돼야

최근 온라인에서는 ‘심심하다’는 말이 구설수에 올랐다. 한 카페가 SNS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공지문을 내자, 일부 네티즌들이 이를 오해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심심하다’는 단어는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은 근래에 제기되던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에 대한 우려에 다시 한 번 불을 댕겼다. 정말 이러한 논란을 문해력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이는 단순히 어휘력의 문제일 뿐 문해력으로 논점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신지영(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어휘력이 전적으로 문해력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단어들이 문해력 측정의 척도가 될 만큼 필수적인 단어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문해력(文解力)은 무엇일까. 문해력은 글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과 다르다. 따라서 글자를 학습한 비문맹인이더라도,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나아가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생활 속에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가령 복약지도서를 읽고 어떤 약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 기차표 할인 규정을 읽고 얼마의 요금을 내야 하는지 알아내는 능력도 포괄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논란은 문해력과 전혀 무관할까. 복수의 전문가들은 어휘력 저하는 문해력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최근의 현상을 마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고 역설한다. 글이란 문법에 따라 나열된 단어의 결합체인데, 제일 기초가 되는 단어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인 오독을 부른다는 것이다. 안미애(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글이 집이라면, 어휘는 집을 이루는 벽돌”이라며 “어휘력 저하가 문해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본지는 문해력 저하 논란에 대한 청년층 내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온라인 구글폼을 통해 ‘청년층 문해력 인식 설문조사(이하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대상은 전국의 청년층(만 19세~34세)이었으며, 응답자는 총 618명이다. 조사 결과 청년층은 대체로 자신이 속한 세대의 문해력이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이나 주변의 사례 등으로 미뤄 봤을 때,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예(81.1%)’라는 응답이 ‘아니요(18.9%)’의 4배가 넘은 것이다.

청년층은 어휘력과 문해력의 상관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떠한 이유로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어휘력 저하가 곧 문해력 저하로 이어짐(55.3%)’ 응답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또한 ‘설명서, 계약서, 안내문, 법령 등을 읽은 후 이해가 어려움(45.7%)’, ‘일상생활 속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음(32.1%)’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청년이 이미 일상 속에서 글을 읽거나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의수강, 과제 수행 시 모르는 어휘나 문장 구조를 자주 접함(31.5%)’ 답변도 있어, 강의실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박철우(안양대학교 국어문화원) 원장은 “요약이 돼 있지 않은 긴 글에 젊은 세대는 금방 지루함을 느낀다”며 “강의가 오랜 시간 진행되면 힘들어하는 것이 체감된다”고 전언했다.

청년층의 문해력 저하에 따른 심각성은 업무환경에서도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문제임을 시사하는 통계도 존재한다. 사람인이 실시한 ‘직원 국어 능력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재직 중인 직원의 국어 능력에 대해 ‘불만족한다(83.8%)’는 응답은 ‘만족한다(16.2%)’는 응답을 5배 이상 앞질렀다. 특히 직원의 국어 능력에 대한 평균 만족도가 ‘40대(75.3점)’, ‘50대 이상(73점)’, ‘30대(72.4점)’, ‘20대(65.2점)’로, 20대 직원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업무에 관련된 불만족스러운 국어 능력은 ‘보고서/기획안 등 문서 작성 능력(65%)’, ‘대면 보고 등 구두 의사소통 능력(39.6%)’, ‘이메일 등 활자 소통 능력(24.6%)’이었다. 양진오(대구대학교 문화예술학부) 교수는 “청년 세대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된 글로 표현하는 일을 힘들어 하고, 적절한 어휘를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많이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청년층의 문해력 문제가 점점 더 악화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영상매체나 SNS와 같은 뉴미디어의 보편화를 문제 삼는 의견이 많다. 길이가 짧은 영상이나 사진, 짧은 글로 소통하는 SNS에 익숙해져 장문의 글을 읽는 행위를 힘들어한다는 지적이다. 당사자인 청년층도 뉴미디어의 사용이 습관화된 현상을 원인으로 가리킨다. ‘청년층 문해력 저하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뉴미디어가 보편화돼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경험이 부족함(94%)’ 응답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고, 뒤이어 ‘대학 교육을 포함해, 현행 공교육을 통해 문해력을 기르기 힘듦(16.8%)’, ‘서로 알려주는 소통의 문화가 부재함(16.4%)’ 답변이 엇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미디어 환경이 다원화됨에 따라 이용자가 원하는 정보만 찾기에 수월해진 현상도 원인으로 꼽힌다. 원하는 정보에 과다 노출되고, 원하지 않는 정보에는 과소 노출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의 언어나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민지(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원하는 정보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는 있지만 주변의 다른 맥락을 전부 삭제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보여준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소통의 문화가 부족하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측도 있었다. 사회 전반에 처음 보는 어휘나 문장 구조 등을 접했을 때 이에 대해 알아보거나, 자신의 정보를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주는 태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타인과 소통하며 정보와 감정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문해력이 향상된다고 전언한다. 장 교수는 “현재 청년 세대는 어떤 단어를 모를 경우에 이를 학습하기보다는 그저 즉각적으로 반응하려고만 한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 청년층 대부분 역시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설문조사에서 ‘문해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예(97.6%)’, ‘아니요(2.4%)’ 응답이 도출돼, 압도적인 수의 청년이 문해력 저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떠한 이유로 문해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일반적인 업무 수행에 요구됨(70.3%)’ 응답이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화된 시대임에도 기초적인 업무를 수행하려면 문해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상과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시대에도 책, 신문 등 활자로 이뤄진 글을 읽고 활용하는 능력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박 원장은 “영상, 음악, 이미지를 많이 접하지만, 남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할 때는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이를 간략하게나마 문자로 풀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분석적, 비판적 사고를 습관화하는 데 도움이 됨(64.6%)’ 응답이 뒤를 이었다. 김영석(명지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도 떨어진다”며 “옳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사회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보의 진위를 판별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함(59.7%)’이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을 기록했다. 실제로 새로운 매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문해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무엇이 진실된 정보인지 선별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고르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문해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디지털 문해력을 갖춰야 디지털 환경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있고, 비판적인 읽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매체 환경이 달라지면 그 매체에 대한 교육이 보강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비판적 읽기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문해력 교육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해력을 갖추기 위해 기존의 중등교육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문조사의 ‘청년층 문해력 저하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말하기와 쓰기 중심으로의 국어 교육 개편(61.1%)’ 응답이 가장 많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타인의 생각을 접하는 읽기 행위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쓰기와 말하기를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신 교수는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는 일이 읽기 교육인데, 말하기와 쓰기를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먼저”라고 밝혔다. 윤석진(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대학에서 글쓰기 교양 수업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공교육 과정에서 본질에 맞지 않는 언어교육이 이뤄졌다는 증거”라며 “지속적으로 언어교육을 받았음에도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면 기존의 언어교육을 되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는 ‘사회적 독서’(59.7%)’가 해결책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독서의 중요성은 항상 강조돼 왔지만, 최근에는 독서 동호회를 통해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누는 활동이 각광받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 독서를 통해 타인과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세계관을 접하는 것이 성인이 스스로 문해력을 기르는 데에 도움 된다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홀로 하는 독서가 사회로 나아가는 문으로 가는 일이라면, 함께하는 독서는 그 문을 나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세대 갈등의 양상으로 번지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대방의 의견과 가치관을 존중하고 듣는 태도를 갖춘다면 자신과 다른 여러 생각에 대해 알아가며 문해력을 기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청년층도 ‘서로 알려주며 개선하는 소통 문화 확산(31.3%)’ 응답을 남기며 이와 같은 해결 방안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장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듣기에서부터 나온다”며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담화 상황에서 천천히 생각하며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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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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