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일을 질문하는 청년들, 운세에 빠지다 (한성대신문, 584호)

    • 입력 2022-12-0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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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12-05 00:02

“어떤 것이 궁금해 오셨나요?” 번화가를 거닐다 보면 쉽게 점술집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청년층은 이러한 점술집에서 경험할 수 있는 타로, 사주 등과 같은 운세 보기에 흠뻑 빠졌다. 2019년 설문조사 기업 ‘엠브레인’이 진행한 ‘운세 서비스 이용 경험 및 인식 평가’에 따르면, 20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사주카페’, ‘길거리 점집’에서의 유료 서비스 이용 경험이 많았다.

이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타로와 사주다. 타로는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점 가운데 하나로 카드에 그려진 그림의 종류 및 방향을 통해 미래를 점친다. 또한 사주는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따져 길흉화복을 점치는 동양의 점술이다.

운세 보기는 과거 신문과 같은 매체나 직접 방문을 통해 이용하는 방식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SNS가 발달하면서 청년층의 접근성이 대폭 확장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온라인 운세 보기 서비스가 성행할 정도다. 임명호(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SNS가 가진 용이성과 익명성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양상”이라며 “온라인에서 운세를 보는 현상 또한 속도의 문제일 뿐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해 홍은실(전남대학교 생활복지학과) 교수는 “운세 보기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손쉽게 접근이 가능해 일시적인 호기심으로 이용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전언했다.

청년층이 이에 열광하는 측면에는 보다 복합적인 사유가 영향을 미친다. 우선적으로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이 크게 작용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청년 시기에는 취업, 이성 교제, 결혼, 자금 마련 등과 같은 막막한 미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양재원(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의 청년층은 미래를 예측하기 더욱 어려워져, 불안감을 덜어내기 위해 운세 보기로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통제감을 획득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전영수(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운세 결과의 신뢰 여부를 떠나서, 취업과 주거 등에서 부모 도움 없이 기성세대를 추격하고 역전할 가능성이 낮아진 청년세대가 불확실성을 이겨내고자 하는 접근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속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이 청년층의 불안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현재 20대 초중반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이 학창 시절에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생활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타인과의 단절 속에서 다시 공동체 생활로 뛰어들어야한다는 지점의 심리적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최승원(덕성여자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대학은 공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직장이라는 사회로 진입하기 전의 과도기를 체험한다는 측면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어렵고 모호할 수도 있는 인간관계를 인내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부재한 상태에서 취업했을 때 적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희(충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면 자신에 대해서나 미래에 대해서나 더욱 막막함을 느낄 것”이라고 술회했다.

더불어 소속감이나 동료 의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세를 활용하기도 한다는 새로운 시각도 제시된다. 젊은 층은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전망하는데, 그 과정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경험에 대한 기회가 적다보니 스스로를 정의할 때 운세를 활용하는 면이 있다”고 전했다. 임 교수는 “운세 보기는 매우 직관적이기 때문에, 본인을 짧은 시간에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며 “만남을 시작할 때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 친밀감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운세 보기가 상담센터 및 정신과 진료와 비교했을 때 접근성이 월등하다는 점을 유행 요인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타로나 사주의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경제적·심리적 부담으로 스스로의 상태를 탐색하고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상담센터나 정신병원은 찾아가기까지의 심적 부담도 있지만,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라며 “인간은 무엇을 알아가는 것에 있어 많은 노력을 투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본성이 있어, 운세와 같은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큰돈과 시간을 들이는 선택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과학적인 방법을 추구하던 과거의 청년층과 달리, 최근에는 비과학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추세가 나타난 것이 운세 보기 유행의 원인으로 주목되고 있다. 바로 ‘반지성주의’의 등장이다. 반지성주의는 과학 등 합리적인 이성으로 구축해놓은 인류의 성과물을 자신이 쉽게 납득하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일련의 통제감을 얻기 위해 점술과 같은 운세 보기에 의지하는 것은 매우 오래된 인간의 특징이지만, 최근 반지성주의의 등장이 운세 보기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유행에 발 맞춰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를 중심으로 저렴하게 이용 가능한 ‘운세 뽑기 기계’도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 김학목(고려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성세대가 가족이나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삶을 하나의 책임으로 무겁게 여겼다면, 청년세대는 자신만의 삶을 적극적으로 찾으면서 문제 상황을 가볍게 해소해 나간다”고 분석했다. 조창오(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운세 뽑기 기계는 미래의 나를 심각하게 규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북돋는 것에 보조 수단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운세에 필요 이상으로 과몰입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청년층은 운세 보기를 바라는 미래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집착하는 행위를 지속하지 않고, 단순 유희로 즐기는 데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중독 현상까지는 발전하지 않을 것이나, 과도한 맹신은 좋지 않다”고 역설하며 “한두 번의 유희적인 재미 경험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스스로 준비하고 돌파하며 수많은 카드가 놓인 미래를 향해 도전하고 실험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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