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아이돌 덕질, 팬들이 움직인다 (한성대신문, 589호)

    • 입력 2023-05-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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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5-08 00:40

<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당신은 아이돌을 좋아하는가? 좋아한다면 ‘어떻게’ 행동하는가. 지금의 청년은 10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그들의 가수를 사랑한다. 청년이 아니라면, 팬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지금의 아이돌 덕질 문화부터 앨범과 포토카드를 시작으로 퍼져나가는 ‘탑꾸’와 ‘예절샷’까지 그 달음질을 따라간다.

박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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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방식도 갖가지더라

젊은 층 사이에서 아이돌 팬 문화가 예전과는 다른 기세로 시시각각 발달하고 있다. 최근의 아이돌 팬은 과거보다 능동적이라고 분석된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가수의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결합한 일명 ‘프로슈머(프로듀서+컨슈머)’가 돼가는 것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플랫폼이 형성돼 팬들이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팬 문화가 활성화된 것에는 기술의 발전이 한몫했다. 기술이 발전하며 현수막 및 스티커 제작 등이 어렵지 않게 되면서, 팬들은 스스로 일종의 2차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2차 창작물을 판매하고 나누며 팬들은 서로의 멤버십을 공유한다. 여기서 멤버십이란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라는 사실, 나아가 팬으로서의 자격이나 지위를 의미한다. 이응철(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전공)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멤버십을 소비로 보여주려는 시도가 아이돌 팬덤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그룹 내 특정 멤버만을 좋아하는 팬 문화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H.O.T’, ‘동방신기’ 시절을 생각해보자. 팬이라면 그룹 전체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서바이벌을 통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었던 ‘프로듀스 101’을 기점으로 팬덤 형태가 멤버 개인을 중점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한 그룹을 모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다 함께 응원봉을 들고, 하얀색 우비를 입는 등의 팬덤 문화와 더불어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팬덤들도 세분화·구체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앨범, 사고 또 사고!

2016년에 ‘방탄소년단’ 앨범을 사 모으던 시기를 마지막으로, 아이돌 세계에는 문외한이 됐던 기자가 지금의 음반시장을 들여다봤다. 젊음의 거리, 홍대의 한 음반 판매점인 ‘비트로드’에는 온갖 아이돌 앨범이 사방으로 진열돼 있었다. 그런데 매장 안에는 특이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음반들 사이에 자리한 책상이 그것이다. 책상 위에는 촬영용 휴대폰 거치대와 앨범 개봉 시 사용할 수 있는 칼이 놓여있다. 이곳은 팬들이 ‘앨범깡’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앨범깡은 ‘음반을 개봉한다’는 뜻의 은어다. 팬들은 앨범을 열어 동봉된 랜덤 구성품 중 하나인 ‘포토카드’를 확인한다. 자신이 특히나 좋아하는 그룹 멤버의 사진이 나오길 기대하며 말이다. 가톨릭대학교 공간디자인·소비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현우 학생은 “앨범을 구매하는 것은 앨범 그 자체보다 그 안에 포함된 포토카드를 얻기 위함”이라며 “남은 앨범은 스크랩하는 등 다채롭게 사용해 비용은 아깝지 않다”고 전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음반 판매점 ‘비트로드’의 입구 [사진 : 박희진 기자]

▲음반 판매점 ‘비트로드’의 내부 [사진 : 박희진 기자]

앨범깡, 어떤 감정으로 임하는지 알아보고자 비트로드에서 앨범 하나를 구매해봤다. 구성품이 가장 알차보이는 앨범으로 선택했다. 앨범을 개봉해보니 CD와 멤버 캐릭터 모양의 작은 등신대, 보드게임을 할 수 있을 법한 종이 한 장, 그리고 포토북이 나왔다. 청년들이 그리도 고대하는 포토카드는 포토북 사이 그 어딘가에서 대기 중일 테다. 포토북을 조심히 넘겨 포토카드가 담긴 장을 발견했다. 주위에 있던 기자들과 함께 어떤 멤버가 나올지 맞히는 시간도 가졌다. 앨범깡을 해보니, 과정에서 오는 짜릿함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멤버가 나올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시간이 즐겁게 다가온다. 어떤 멤버의 어떤 사진이 담겨있을지 설레하며 즐길 수 있었다. 김 학생은 “같은 팬덤 내 팬들과 함께 앨범을 개봉한다면 떨림과 기쁨을 나눌 수 있어 느끼는 감정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앨범깡’을 하고 있는 기자 [사진 : 신지원 기자]

구성품인 포토카드를 위한 앨범 소비가 증가하니, 일각에서는 포토카드 외에 버려지는 CD로 인한 환경오염을 우려한다. 이러한 우려를 기업 측도 인지한 듯, 최근 ‘키노앨범’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앨범이 등장했다. 키노앨범은 스마트폰을 통해 앨범 속 음악을 저장할 수 있어 CD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장점이 있다. 김 문화평론가는 “새로운 앨범형식의 등장은 바람직한 시도”라면서도, “기존의 CD를 대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음반 판매점에서 구매한 키노앨범 [사진 : 박희진 기자]

키노앨범, 기자도 하나 구매해 봤다. 아이돌 팬의 성지로 불리는 광화문의 한 음반 판매점에 방문했다. 기자가 구매한 앨범은 키노앨범과 포토카드로만 이뤄져 있는 작은 크기였다. 구매해 보니 알겠다. 키노앨범은 작은 크기에서 오는 메리트가 분명했다. 포토카드와 ‘항상’ 같이 들고 다니기에 휴대하는 데 거침이 없는 것이다. 김 학생은 “앨범 크기가 작아 열쇠고리로 사용할 수 있고, 언제든지 그 앨범을 휴대폰과 연결하면 앨범 속 노래를 들을 수 있어 구매한다”고 덧붙였다.

내 가수만큼이나 소중한 포토카드

앨범깡으로 어렵게 구한 좋아하는 멤버의 포토카드, 대충 보관하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팬들 사이에서는 포토카드를 보관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그중 최근에는 ‘탑꾸(탑 로더 꾸미기)’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탑 로더(Top loader)는 위로 뚫린 입구로 포토카드를 넣어 보관할 수 있는 PVC 재질의 보관함이다. 팬들은 탑 로더의 둘레를 데코덴과 레진, 다양한 파츠를 활용해 꾸민다. 탑꾸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포토카드를 한층 더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김 문화평론가는 “단순히 포토카드 모으기에 ‘꾸미기’를 더해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로서 그 시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데코덴과 파츠로 만든 ‘탑꾸’의 결과물 [사진 : 박희진 기자]

주변 아이돌 팬 친구들이 하는 것을 바라보다 보니, 이 역시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키노앨범을 구매하며 얻은 포토카드를 꾸며보기로 결심했다. 동대문종합시장으로 향해 액세서리 부자재를 판매하는 층으로 향했다. 가게면 가게마다 탑꾸를 하고자 부자재를 고르는 청년들이 바글바글했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파츠 종류에 고민과 구매의 시간은 길어져 갔다. 파츠와 함께 탑 로더도 판매하고 있어 일괄 구매했다. 탑 로더에 포토카드를 넣고 그 위를 꾸미기 시작했다. 직접 해보니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양모 펠트* 하듯 10개도 앉은 자리에서 뚝딱뚝딱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소리도 뱉어봤다.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였다.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서진 학생은 “갖고 있는 포토카드를 더 예쁘게 보고 싶다”며 “지인과 만날 때 포토카드를 들고 사진 찍는 경우가 많아 화면에서 화려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탑꾸를 한다”고 부연했다.



▲음식 위에서 찍은 ‘예절샷’ [사진 : 박희진 기자]

청년의 포토카드를 향한 열정은 앨범을 개봉하는 순간을 넘어 식사 시간에도 함께한다. ‘예절샷’을 남기는 것이다. 예절샷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인증을 위해 포토카드와 음식을 함께 찍어 예절을 차리는 행위다. 기자도 덕질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를 만나 포토카드를 빌려 예절샷을 남겨봤다. 음식 위로 포토카드를 들고 사진을 남기니,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순간이 더해진다. 이 학생은 “단순히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예절샷이라는 하나의 이벤트를 곁들임으로써 재미가 더해진다”고 설명했다. 포토카드를 활용한 예절샷에 대해 이 교수는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같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장치가 된다”며 동시에 “아이돌 팬덤은 종교적인 영역이라고 생각되는데, 포토카드가 아이돌의 분신으로서 작용하는 부분도 있다”고 전언했다.

*양모 펠트 : 양모 섬유에 열, 수분, 압력, 알칼리 따위를 가해 섬유가 서로 엉키고 줄어들게 해서 일정한 형태로 고정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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