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을 자격, 영세중립국 (한성대신문, 590호)

    • 입력 2023-06-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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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6-12 00:01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다시금 주목 받는 국가들이 있다. 바로 ‘영세중립국’이다. 이들 중 일부는 러시아로부터 자국을 지키기 위해 영세중립국 지위를 포기했으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협상테이블에 자국의 영세중립화 방안을 올려놓기도 했다. 영세중립국이 뭐길래, 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일까.

국제관계에 있어서 ‘중립’이란, 전쟁 당사국 중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전쟁 당사국에 군사적 원조나 편의를 제공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중립 지위를 전쟁이나 갈등 상황에 관계없이 영원히 갖는 국가를 ‘영세중립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영세중립국은 세계 곳곳에 위치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등 영세중립국이 그 나라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국가도 존재하며,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영세중립 지위를 유지해 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그 지위를 포기한 국가들도 있다.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등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세중립국 중 하나다.

역사 속에서 힘이 약한 국가가 영세중립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주변국이나 강대국의 전쟁 등에 휘말릴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세중립 지위가 더 이상 안전과 이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그 지위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

스웨덴은 안전과 이익을 위해 19세기경부터 중립 외교를 펼치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영세중립국 지위를 내놓았다. 러시아를 견제하는 미국 등의 서방 국가가 대거 가입한 집단 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 가입을 신청하면서다. 19세기 후반의 스웨덴은 당시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독일과 본래 발트 해* 연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사이의 균형 외교 전략을 취했고, 이는 스웨덴 중립 정책의 토대가 됐다. 김인춘(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는 “스웨덴이 200년 이상 유지해 온 중립을 포기한 것은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세중립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3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영세중립국으로 거듭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 연구교수는 “강대국 간 이해충돌로 안보와 생존권을 위협받는 국가에게 영세중립은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조건은 ‘주관적 조건’이다. 영세중립국을 지향하는 국가의 국민과 지도자가 영세중립화에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객관적 조건’도 갖춰야 한다. 이는 주로 지리적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국가의 안전이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강대국이 이웃해 있는 경우라면, 영세중립화 전략을 검토할 만한 객관적 조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임상우(서강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는 “지리적인 위치가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들 간의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중립을 시도했거나 유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국제적 조건’이다. 주변국과의 협정 또는 동의 등을 통해 영세중립 지위를 인정받아야 함을 말한다. 강유덕(한국외국어대학교 Language&Trade학부) 교수는 “‘우리는 중립국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영세중립국 중 하나인 스위스는 1499년 독립한 이후부터 줄곧 영세중립화 정책을 지향해 왔다. 그리고 스위스는 스스로 영세중립국을 표방한 지 약 300여 년 만에 국제사회로부터 영세중립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유럽의 중앙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였기에, 주변국으로부터 잦은 외침을 당해 온 역사가 스위스 영세중립화의 배경이었다. 영세중립화를 선언한 이후에도 스위스는 프랑스 등 주변국의 침입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스위스는 지속적으로 영세중립 노선을 고수했고, 1815년에 이르러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유럽 주요 강대국 대표자가 모인 ‘빈 회의**’에서 스위스의 영세중립국 지위가 처음으로 공식 인정된 것이다. 임 교수는 “스위스는 산악지대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중세 이래 통일된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해 침탈되기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세중립국인 오스트리아의 사례에서는 특히 국제적 조건이 영세중립화에 반드시 필요함을 엿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령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전쟁이 끝난 이후 승전 4국(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게 분할 점령됐다. 이 때문에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도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위시로 한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 시기가 도래하자, 강대국들 모두가 오스트리아에서의 패권을 놓지 않았다. 이에 오스트리아 임시정부가 독립을 위해 영세중립화 방안을 꺼내들었다. 당시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스탈린은 오스트리아를 공산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고 싶었기에, 영세중립화 방안에 반대했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취임한 흐루쇼프는 오스트리아의 공산화는 이미 어렵다고 판단하고, 오스트리아 영세중립화 방안에 힘을 실어줬다. 소련이 마음을 돌린 덕에 오스트리아의 영세중립화 및 독립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으며, 결국 오스트리아는 1955년 독립함과 동시에 영세중립 지위를 얻었다.

영세중립국의 중립 의무는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까. 중립 지위가 전쟁이나 갈등 상황을 전제한 것이기에, 영세중립국들은 군사·정치적 영역에서는 엄격한 중립을 지킨다. 나토와 같은 집단 안보체제 등에 가입하거나, 특정 국가에 무기 등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러한 중립 의무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실제로 스위스는 중립 의무 준수를 위해 유럽 국가의 연합체조차 가입하지 않았지만, 자국의 권익을 위해 경제적 교류만큼은 활발히 진행한다는 분석이 존재한다. 강 교수는 “스위스는 유럽연합(이하 EU)에 가입돼 있지 않지만 EU와의 경제적 관계에 있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영세중립국 지위의 지속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러시아의 무력 행사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 내 다른 국가를 향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임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공해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의해 피해를 보아 왔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양국이 나토에 가입하면 북유럽 전역에 걸쳐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립 전선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영세중립국 지위를 포기한 스웨덴, 핀란드를 제외하고도, 스위스조차 영세중립국으로서 원칙을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해 국제사회의 의심을 받는 실정이다. 스위스는 올해 들어 30년 만에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을 단행했고, 이것이 자국 내에서도 중립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분쟁에 휩싸일 때 영세중립국의 지위가 위태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세중립국 지위를 내려놓아도 중간자 역할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경쟁 상대국에 우리 편의 입장을 전달하면서도, 우리 편에 반대쪽의 입장을 알리는 일을 맡을 것이라는 의미다. 강 교수는 이에 대해 “영세중립은 한 국가의 대외적 입장임과 동시에 사회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며 “스웨덴,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거나 가입을 시도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화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서방 세계가 러시아 등과 접촉할 때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발트 해 : 북유럽에 위치한 바다로, 덴마크·독일·러시아·스웨덴·핀란드 등에 둘러싸여 있음

**빈 회의 :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를 수습하기 위한 회의, 러시아·영국·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이 주도함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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