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에 ‘AI 융합교육’ 열풍이 거세다. 강의계획서 곳곳에 ‘AI’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AI+X 교과목과 융합전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려는 시도 자체는 자연스러우나, 충분한 점검과 설계 없이 속도만 앞세운 채 밀어붙이는 행태가 반복되는 듯하다.
융합교육은 본래 서로 다른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교육 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 사회의 모습은 그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융합학과의 폐지율은 2016년 11.8%에서 2023년 30.9%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기존 교육과정에 명칭만 덧붙인 채 운영되는 사례도 확인됐다. 겉으로는 ‘융합’을 표방하지만, 이를 지탱할 교육적 토대는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본교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학기 AI+X 교과목을 확대하고 기존 전공 교과목에도 ‘AI’를 덧붙이는 등 융합교육 체계가 개편됐다. 그러나 강의실 안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부 교과목은 기존 교육과정을 유지한 채 과목명만 변경됐고 과제 수행 과정에서도 AI 활용 여부를 학생 개인의 선택에 전가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맞물린 영향일까. 성급하게 목표와 항목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학생들에게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처사다. 그러나 교육은 항목을 나열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교육과정이 설계되고, 그에 따라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지금의 방식은 방향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춰 운영을 끼워 맞추는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대학 교육의 본질은 ‘생산력’에 방점이 찍히지 않는다. 문제를 탐색하고 해결 전략을 설계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판단 기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야말로 새로운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한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이어진다. AI를 활용해 결과물을 빠르게 생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경험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교육이 구조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본교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성, 한성으로 모여드는 세계”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름만 바뀐 교과목과 형식적인 융합이 반복되는 강의실에서, 학생이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 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라는 이름을 덧붙이는 속도가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설계하는 것이다. 본교가 외형적 변화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구축할 때 비로소 ‘융합교육’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희 편집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