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배려를 바라는 자, 근거를 증명하라? (한성대신문, 544호)

    • 입력 2019-04-15 00:00

요즘 웬만한 대중교통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석이 마련돼 있다. 지하철의 경우 장애인·노약자·임산부·영유아 동반자를 위한 좌석이, 버스의 경우 노약자·임산부를 위한 좌석이 별도로 지정돼 있다. 특히, 지하철 교통약자 배려석은 일반석과 분리돼 있고, 이 배려석과는 별개로 일반석에도 임산부 배려석이 추가로 지정돼 있다.

최근 이러한 교통약자 배려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많다. 몇 년 전만해도 무조건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힘들더라도 배려석만은 비워두는 것이 당연한 풍조였다. 그러나 요즘은 멀쩡한 좌석을 비워두고 서서 가느니, 빈 배려석에 앉아 있다가 교통약자가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입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비록 지금은 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지만, 인천에 위치한 집에서 학교까지 대중교통으로 통학을 하던 때에는 나도 후자의 입장에 공감했다. 그때 나는 ‘배려는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배려를 법이나 제도로써 강요한다면 그 배려가 진정 의미 있는지 의문스러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미처 생각치 못한 오류가 있었다.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교통약자가 나타나면 자리를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그렇지 않은 교통약자는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우리 눈으로 알아볼 수 없는 교통약자가 배려석에 앉으려면 스스로 교통약자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걸까?

보통 임산부의 배는 임신 13주차부터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옷을 입은 상태에서 누구든지 알아볼 정도로 티가 나려면 최소 임신 5개월은 지나야 한다. 즉, 임산부 스스로 본인의 임신 여부를 밝히지 않는다면 임신 기간 10개월 중 절반은 먼저 알아보기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10대 또는 20대 초중반의 앳된 임산부라면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임산부 배지를 달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렇다면 배지를 달았는데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이 배려석에 앉아 자고 있는 일반인을 깨워, 또는 이어폰을 낀 채 휴대폰을 주시하는 사람을 크게 불러 ‘자리 양보해주세요’라고 부탁해야 할까?

임산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장애인 중에서도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장애인이 더러 있다. 대표적으로 크론병 및 궤양성 대장염 환우들이 그렇다. 이들의 주요 증상은 복통을 동반한 설사로, 모두 만성 질환인 동시에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또, 장애 등급을 판정받을 수 있다. 증세가 극심한 경우 장루(인공항문), 즉 대변 주머니를 차고 다닌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이들이 배려석에 앉으려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저는 크론병 환자입니다’ 또는 ‘저는 궤양성 대장염을 앓고 있습니다’라고 밝히기라도 해야 할까?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이 어떤 병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텐데 말이다.

임신도, 지병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 중 일부다. 자리에 앉아 가고 싶으면 공공장소에서 타인에게 그 근거를 증명하라는 말,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강예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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