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기의 ‘총학생회’, 그들이 설 곳은 어디인가 (한성대신문, 545호)

    • 입력 2019-05-13 00:00

최근 대학가에는 총학생회(이하 총학)를 꾸리지 않은 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35개교 중 8개교(22.86%)는 2019년 1학기를 총학 없이 맞이했다. 그중 한양대학교 (이하 한양대) 후보자가 한 명도 출마하지 않아 ‘2019학년도 총학 보궐 선거’가 무산됐으며 연세대학교는 지난해까지 투표율이 미달해 ‘3년 연속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같이 출마자가 없어 총학이 무산되거나 학생들의 투표율이 낮아 개표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의 중심에는 ‘총학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이 있었다.

학내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무관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80~90년대 민주화 성취 이후 점차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IMF 사태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현격히 증가해 현재 정점에 이르렀다. 김성수(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를 “여기에는 사회적 수준의 정치적 무관심이 반영됐다. 또 2000년대에 확산된 신자유주의가 정치 및 공동체의 중요성보다 개인주의 및 경제적 생존을 최우선의 가치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학내 정치 상황이 취업‧거주와 같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거둔 것이다.

류석진(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0~1990년대에 시대가 당면한 ‘민주화’라는 공통 과제가 해결된 후, 총학은 학내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러나 학내 문제에는 학생들의 관심사를 하나로 엮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즉, 이전까지는 학외의 ‘민주화’ 공통 의제가 학생들의 결속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을 뿐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학가에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기존의 자주통일‧노동인권을 중시하던 ‘운동권’ 총학과 거리를 두는 소위 ‘비운동권’이라 불리는 총학이 대거 등장했다. 이에 대해 최민석(대학연구네트워크) 연구위원은 “이는 대학 내외의 운동과 관련한 이슈의 범위가 그 전보다 넓어 진 것”이라며 “퀴어 운동, 페미니즘 사회 운동 등의 인권 활동은 단순히 운동권이 퇴조하고 비운동권이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닌, 학생들의 ‘니즈(needs)’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 대표인 총학과 비대위가 운영비를 횡령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학생들의 외면이 점점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한양대 전임 비대위원장은 약 500만 원을, 건국대학교 총학의 전직 간부는 약 1500만 원을 횡령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총학을 ‘부패와 이권으로 점철된 자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에 더해 ‘총학 무용론’을 제기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총학생회가 대체 어떤 역할을 하는 집단이며, 굳이 대학사회에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여전히 총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일보>가 지난 2월 13일부터 18일까지 대학생 5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470명(90.74%)의 학생이 ‘총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즉, 학생의 권리를 대변할 대표기구 자체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표기구에 대한 수요’와 ‘총학생회의 몰락’이라는 대학가의 모순은 왜 발생할까?

이에 대해 이재묵(한국외국어대 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는 학생들이 변화하는 학생 사회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 현 총학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의 관심은 낮은 등록금, 좋은 복지, 좋은 취업 등과 같은 재정문제”라며 “이는 현 총학의 역량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류 교수는 “총학은 일종의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다”며 “학생들은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싶지만, 비용을 지불하거나 학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첨언했다. 일종의 ‘무임승차’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사회에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학내 사안에 참여하지 않으니 총학에게 힘이 실리지 않고, 총학이 힘이 없으니 학생들은 학내 사안에 더 관심을 갖지 않는 형세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총학이란 무엇일까?

김 교수는 “학생들은 그들의 삶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총학, 어느 정도 ‘지성인’으로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선도할 수 있는 자신들의 대표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류 교수는 “무임승차를 막 고 적극적인 학생 참여를 높여 활동의 정당성을 높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 총학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전했다.

한편, 이해지(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학생들의 니즈는 학내의 복지, 소통과 같은 가까운 문제부터 시작해 적립금, 총장직선제, 협의체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의제들까지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이 복잡하고 다원화된 학생들의 요구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고작 1년 남짓한 총학의 임기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다시 학생이라는 지지 기반을 회복하는 것에 집중해야 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수요는 현 학생회의 역량으로는 단기간에 풀 수 없다”며 “총학이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고 간담회나 공청회를 늘리는 등 학내 사회적 자본을 복원해 학생회 조직의 역량 기반을 다지는 것이 이를 극복하는 첫 단계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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