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생명의 저울은 기울지 않는다 (한성대신문, 548호)

    • 입력 2019-10-1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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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0-13 21:51

나는 평소 여가시간에 웹툰을 즐겨보는 편이다. 얼마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읽을 만한 웹툰이 없나 살펴보던 중이었다. 마침 좋아하는 작가가 낸 신작이 눈에 들어왔고, 반가운 마음으로 해당 웹툰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웹툰은 ‘길고양이 연쇄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다소 끔찍하게 다가오는 내용이었지만, 긴장감 넘치는 작가의 묘사에 금세 빠져들었다.

그러나, 몇 컷을 채 넘기지 못하고 등장 인물들의 대사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갈기갈기 찢겨 죽어나간 일에 대해 동네 주민이 “고양이가 죽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인간을 겨냥한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사건을 수사하자는 말에 경찰이 “옆동네 사건으로 바빠 죽겠는데 무슨 고양이 때문에 순찰을 강화하느냐”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댓글 창 역시 비슷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깟 고양이 목숨보다 사람이 중요하지, 호들갑 떨지 마라”, “냥빠(고양이 애호가들을 비하하는 말)들은 어린애 마냥 감정에 호소해 동물을 우선시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라”는 댓글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나마 작중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들은 ‘길고양이 연쇄 살해 사건이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만 말할 뿐, 한 생명이 갈기갈기 찢겨나간 것에 의미를 두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이들은 무슨 자격으로 생명에 ‘그깟’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등한시하는 것일까. 과연 인간이 이유 없이 휘두른 칼에 희생된 생명보다 우리의 편의가 우선시되는 것이 이성적인 사고방식일까. 동시에, 학창시절 읽었던 소설 『곰의 제국』이 떠올랐다. 이 소설 속 인간은 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들을 위한 애완용 혹은 식용 동물로 키워진다. 이야기 속에 서 인간은 곰에게 쉬이 학대받고, 살해당하고, 장난감 취급을 당하지만, 인간보호 단체에 속한 곰을 제외한 어떤 곰도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 세계의 ‘이성’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인간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곰의 모습은, 고양이의 생명을 하찮게 바라보는 네티즌의 모습과 중첩된다. 아마도 이 소설 속에서 인간이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했다면 곰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깟 인간 죽은 게 대수라고.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처리해”

정명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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