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개발로 집 잃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죠? (한성대신문, 551호)

    • 입력 2019-12-0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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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2-02 13:45

<편집자주>

삼선제5구역 재개발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즈음, 우리학교 중문 인근의 거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이주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곳을 오랜시간 지켜온 상점들도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서 삼선제5구역은 점점 ‘폐허’로 변하고 있다. 모두가 이주 준비로 한창이지만,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동물이 있으니, 바로 ‘길고양이’다.

재개발이 진행될 삼선제5구역 인근은 많은 길고양이의 터전이다. 우촌관 중문 앞의 ‘까까’, ‘큰뫼분식’과 주차장 입구 부근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주택가 등지에도 많은 길고양이들이 서식 중이다. 재개발이 시작돼 인근이 공사장으로 변하면 이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터전을 잃은 길고양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지면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가연 기자 [email protected]



우리에게 재개발은 악몽이에요

길고양이는 말그대로 도심지나 주택가에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하는 고양이를 말한다. 서울시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시 내 도심지나 주택가에 서식하는 길고양이는 약 139,000마리로 집계됐다. 이는 서울시 면적 1㎢ 당 대략 230마리의 길고양이가 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길고양이는 인간들과 아주 밀접한 존재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이 시작되면 길고양이는 수많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재개발·재건축은 곧 길고양이의 서식지가 파괴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원복(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길고양이에게 재개발이란 ‘악몽’ 같은 것”이라며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길고양이는 전쟁을 겪고 있는 어린아이라 해도 무방하다. 먹이를 구하기 어렵고, 익숙했던 공간이 위험한 공간으로 바뀌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손이슬(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 선임활동가는 “길고양이는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포크레인을 피해 지하로 숨곤 한다. 그곳을 미처빠져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반사다”라고 전했다.

사료를 주던 주민들이 그 지역을 떠나는 것도 길고양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다. 먹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임영기(동물구조119) 대표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은 건물이 다 부서진 뒤 펜스로 봉쇄된다. 먹이활동을 돕는 봉사자들이 그 지역에 들어가지 못하니 결과적으로 아사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길고양이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역축소로 인한 개체 밀도 증가 때문에 발정이 동기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개체수 증가로 이어져 치열한 영역 및 먹이 경쟁을 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관찰을 통해 점진적으로 학습해 나가는 고양이에게 재개발·재건축과 같은 환경 변화는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심지어는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양이의 특성상 질병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이같은 이유에도 길고양이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바로 그들이 ‘영역동물’이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자신의 영역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동하는 고양이도 있다. 하지만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 자발적 이동이 쉽지 않다”며 “이동을 했다가도 재개발·재건축 현장으로 돌아오는 길고양이도 많다”고 말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주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재개발·재건축으로 서식지가 파괴된 길고양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제일 먼저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방법인 ‘TNR(Trap-Neuter-Return)’을 꼽았다. TNR은 포획(Trap)한 뒤 중성화 수술(Neuter)을 시켜 포획한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하는 방법으로,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인도적으로 길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식이다.

또한 ‘길고양이 서식지 이주’도 좋은 방법이다. 길고양이의 서식지 이주는 크게 ‘강제 이주’와 ‘점진적 이주’로 나뉜다. ‘강제 이주’는 고양이를 포획한 후 이주 공간에 방사하는 관리 모델로, 공사 시작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시에 검토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점진적 이주’는 배식자리를 조금씩 이동시켜 길고양이들이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 인접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게 하는 이주 방식이다.

재개발·재건축 지역 길고양이의 개체수 확인, TNR, 이주를 위한 구조까지 길고양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역주민, 동물보호단체, 재개발·재건축 조합 등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손 활동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이다. 특히 시공사 및 해당 지자체와의 소통을 통해 공사 시작부터 끝까지 길고양이의 안정적인 이주를 위해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재개발·재건축 지역 길고양이와 관련한 제도적 보호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 대표는 “법적인 장치가 없다보니 시공사에 (구조 협력을) 요청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갈 곳 없는 길고양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힘쓸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 시작 전 공사 구역 내 길고양이 보호조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장 공사가 시작되는 지역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유현지(서울특별시 시민건강국 동물보호과 수의공중보건팀) 주무관은 “지금은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 시범사업만 계획된 상태”라며 “시범사업도 전역에 시행할 수 없어 몇몇 지역에서만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즉 삼선제5구역처럼 당장 재개발‧재건축이 시작되는 지역에는 길고양이 보호조치 의무화 방안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수준은 외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인간만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말 못하는 고양이도 잘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며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사는 길고양이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금이야말로 길고양이의 복지를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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